역도산!
일본의 2차대전 패망후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레슬러...
현재의 종합격투기를 있게한 시발점이자 격투 프로모션의
시초
역도산을 흠모하며 자란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적부터
프로레슬링과 역도산에 관련된 책만 모았고 60년대 70년대 구하기 힘든
이미 고인이 되신 김일선생님의 프로레슬링 경기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입도 어렵게 구해
몇번이고 다시 돌려볼정도로 열정적인 프로레슬링 매니아였다
그의 체격은 무럭무럭 자라
20세땐 덩치 큰 외국인들도 지나가다 다시 뒤돌아 볼 정도로 거한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릴적부터 그의 꿈이었던
프로레슬러가 되기위해 입단 테스트를 거쳐
한국 프로레슬링계 대부 이왕표의 도장에 정식 문하생으로 입문하게
된다
그는 프로레슬링 선수로서 침체된 국내 프로레슬링계를 살리기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였으나 현실에서
심각한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후 진로를 고민하던중 2004년 국내 MMA단체의 러브콜을 받아
화려하게
종합격투기 링에 데뷔한 임준수는 명승부를 보여주며 승승장구를 거듭하였으나
부상과 여러가지 악재로 인해 운동에 전념하지 못한채
국제전에서 연패를 당하게 된다
방황을 하며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임준수는 역도산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끝이 어디인지 끝까지 가보자'라는
악바리 투혼정신을 발휘해 힘든 환경에서도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프로레슬러라는 자부심과
언젠가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중흥기를 '내손으로 다시
살려보리라'라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임준수라는 이름 석자를 종합격투계에서 남겨
'프로레슬러도 강하다!'라는 것을 보여준후 미련없이 은퇴하리라... 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그에게 자리 잡고
있었다
2차 대전 일본의 패망 이후 실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당시 일본 국왕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리며
외국에서 건너온 거구의 프로레슬러들을 가라데촙으로 때려눕혀
일본 국민들에게 '영웅'이라 불리며 통쾌함을 안겨줬던 대선배의
가르침처럼...
1997년 건국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IMF때 박세리 박찬호가 국민들에게 힘을
주었듯이...
2009년 현재 김연아 박지성이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듯이...
임준수도 어려운 국내 종합격투기와 프로레슬링의 부흥을 위해 한계를 넘나드는 극한 훈련을 하고
있다
" 지켜봐 주십시요! 이기던 지던 최선을 다하는 경기, 물러서지않는 화끈한 경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10KM의 런닝과 6라운드의 실전을 방불케하는 스파링을 거친 후
땀에
흠뻑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임준수는 씨익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피겨스케이트의 불모지에서
김연아라는 대스타가 탄생해 피겨붐이 일었듯
임준수도 언젠가 일본 미국 러시아등등 격투강국에서
한국을 코리아 넘버원!
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대한민국을 인정해 줄 날이 올것이라 자신있게 말한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동안의 시련은 저를 한단계 더 도약하게 만들었고 미래에 닥칠 어떠한 시련도 저를 더욱 강하게
할것입니다"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습니다!"
"전 프로레슬링과 격투기에 인생을
걸었으니까요..."
멋진 사나이 임준수의 네오파이트 복귀전을 기대해본다~~
2009년
6월4일 신도림 테크노마트 11층
죽음의 헤비급 4강 토너먼트에서 임준수 선수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쓴이: 프리랜서 격투 칼럼니스트
(태랑)
iceknife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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